Popular Articles

  • 야스쿠니 신사 토리이와 배전
    Category: 신사와 사원

    일본의 역사와 함께 걸어온【야스쿠니 신사】 도쿄 뿐만 아니라 일본 내에서 가장 유명한 신사라고도 알려진 "야스쿠니 신사(靖国神社)". 전쟁에서 숨진 군인・간호사・민간인 등, 약 240만명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야스쿠니 신사는 종종 정치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안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이지만, 참배객들을 맞이하는 웅장한 토리이와 아름다운 일본 정원만 본다면 매력적인 관광지이기도 하지요. 이번에는 그런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서 소개합니다.역사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 유신의 선구가 된 무진 전쟁(戊辰戦争)에서 숨진 사람들을 모시기 위함이라는 천황의 뜻에 의해 메이지 2년에 창건되었습니다. 창건 당초는 "도쿄 초혼사(東京招魂社)"로 불리고 있었지만, 메이지 10년에 "야스쿠니 신사"로 개명되었습니다. 이 "야스쿠니"라는 이름 역시 메이지 천황의 명명에 따른 것으로, "평화로운 국가를 건설하다"라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그 외에도 ‘메이지 유신’, ’청일 전쟁’, ’러일 전쟁’, ‘제1차 세계 대전’과 같은 전쟁에서 숨진 사람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이는 야스쿠니 신사의 "국가 때문에 목숨을 바치신 분들을 위령 표창하는 것"이라는 건립 초기부터 변하지 않는 목적에 따른 것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의 사망자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종종 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도조 히데키 등 제2차 세계 대전의 A급 전범 14명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그런 인물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일반인과 함께 모셔지고 있는 것, 그 신사에 일본 총리 각료가 방문하여 참배하는 것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논쟁이 벌어져왔죠. 그럼에도,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을 대표하는 신사로 친숙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이 찾아옵니다. 여기에서는 의외로 알려지지 않은 야스쿠니 신사의 볼거리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20.sep 2018

  • 구능산 동조궁의 벚꽃
    Category: 신사와 사원
    Area: 시즈오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연고지【구능산 동조궁】 에도(江戸) 막부(정부)의 장군,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와 관련이 깊은 구능산 동조궁(久能山東照宮). 일본 전국에 위치한 동조궁들의 창시격이기도 하며, 이에야스가 바라던 천하 태평의 세상을 상징하는 신사라고 합니다. 창건 당시 최고의 기술을 사용하여 세워진 신전은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건물. 경내에 있는 박물관에는 장군 가문의 무기와 갑옷 등과, 이외에 이에야스가 스페인 국왕으로 부터 받았다는 서양시계도 전시되어 있습니다.구능산의 역사 아스카(飛鳥)시대 ~ 가마쿠라(鎌倉)시대 구능산은 7세기 경, 스이코 천황(推古天皇) 시대에 구노 타다히토(久能忠仁)가 처음 개산(開山, 종파를 여는 것)하고 절을 지었습니다. 거기에 관음보살의 상을 안치하고 "보타락산(補陀落山, 관음보살의 거처라고 전해지는 산)구능사" 라고 칭하면서 구능산으로 불리게 됐다고 여겨집니다. 많은 유명한 수도승도 구능사를 찾아 헤이안(平安) 말기부터 가마쿠라 초기에 걸쳐서는 1,500명의 중도를 가진 대규모 사원이 되었습니다. 이 가마쿠라 시대의 전후를 구능산의 가장 번성했던 시대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카마쿠라 중기의 가로쿠 연간(嘉禄年間, 1225년경)에 일어난 화재로 소실되어 버렸습니다. 무로마치(室町)시대 ~ 에도(江戸)시대 초기 16세기 후반 이곳을 다스리던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공은 구능산이 방어에 유리한 지형의 "요새(要害)"란 것을 깨닫고, 산 정상에 성채를 쌓고서 구능성이라고 칭했습니다. 다케다 가문이 망하고 이 땅 일대가 도쿠가와 가문의 것이 되며 구능성도 도쿠가와 가문의 것이 됐습니다. 이에야스 공은 구능산이 요충지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주목하고서 "구능산은 슨푸(駿府) 성의 혼마루(천수각)와 같이 항상 소중히하는 마음이다"라는 말도 남겼다고 합니다. 이에야스 사거 후 1616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 공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에야스 공의 유언에 따라 유해는 구능산에 매장되었습니다. 이듬해였던 1617년에는 2대 장군 히데타다(秀忠) 공의 명령으로 동조궁이 창건되었습니다. 이에야스 공의 유언에는 한 주기 뒤에는 닛코산(日光山)에 제신의 혼령을 모셔주길 원한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자손을 지켜보기 위해 신이 되어 모셔지는 것을 원했고, 그 땅으로서 에도의 정북쪽에 해당하는 닛코의 땅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이 현재의 닛코 동조궁(日光東照宮)이 되었습니다.

    18.jul 2018

  • 쿠사츠 온천의 유하타와 용출되는 물

    깊은 역사를 지닌【쿠사츠 온천】에서 유모미 체험! 군마현 서부에 위치한 쿠사츠 온천(草津温泉). 기후현의 게로 온천(下呂温泉), 효고현의 아리마 온천(有馬温泉)과 함께 일본 3대 온천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많은양의 온천수가 솟아오르는 지역으로도 유명한 군마. 그 양은 매 분마다 32,000리터 이상이라고. 어마어마한 온천탕의 양과 강한 산성을 띄는 천질을 자랑하는 온천입니다. 쿠사츠 온천의 상징적 존재인 "유하타(湯畑)"에서는 끊임없이 온천이 솟아납니다. 주변 보도는 전부 기와로 되어 있으며, 길을 걸으며 유하타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면 이 모든 것이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습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가 있습니다. 바로 "유모미(湯もみ)" 입니다. 유모미는 온천의 물을 적당한 온도로 식히기 위해 나무 판자로 젓는 행동을 말합니다. 이는 쿠사츠 온천을 대표하는 이벤트로 자리하고있습니다. 쿠사츠 온천의 역사 쿠사츠 온천이 발견된 역사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어떤 인물이 먼저 발견했고 어떤 기록이 먼저인지 명확하지는 않으나, 일본 각지 저명 인사가 방문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전국시대에는 이미 쿠사츠 온천에 대해 모두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쿠사츠 온천의 원천은 인근에 있는 시로네산(白根山)에있습니다. 시로네산에 내린 비나 눈이 땅속에 스며들고, 마그마에 데워지며 점차 고도가 낮은 장소로 이동합니다. 약 30년 동안 뜨겁게 덥혀져 나오는 물이 바로 쿠사츠 온천의 원천이 됩니다. (여러가지 설이 있음) 「쿠사츠」라는 이름의 유래 "쿠사츠"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두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온천 특유의 유황 냄새에서 비롯한 냄새 나는 물을 뜻하는 "냄새의 소용돌이(くさうず)" 로 불리다가 그것이 쿠사츠(くさつ)로 변화했다는 설, 다른 하나는 대반약경(大般若経)에 있는 "남방의 유명한 쿠사츠탕"이라는 대목을 가져와 붙여졌다는 설입니다. 온천 마을을 산책하고 있다 보면 "냄새의 소용돌이"라고 불렸던 것이 납득 갈 만큼 유황 냄새가 곳곳에 잔뜩 피어나고 있습니다.

    24.jul 2018

  • 아오모리 네부타 마츠리・네부타의 얼굴

    【아오모리 네부타 마츠리】를 두배로 즐기는「하네토」!? "아오모리 네부타 마츠리(青森ねぶた祭り)"는 토호쿠(東北) 지방 3대 축제 중 하나로 꼽히는 행사입니다. 매년 8월 2일부터 7일까지, 6일간 개최되며, 총 300만명을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는 인기 축제라고 합니다. 여기서 "네부타(ねぶた)"란, 거리를 행진하는 커다란 인형 형태의 등불을 말합니다. 그 크기는 무려 5m에 달하는 것도 있다고. 또한 네부타 주위를 "하네토(ハネト, 춤꾼)"라 불리는 무희들이 춤을 추는 것이 네부타 마츠리의 특징이지요! 관광객들도 하네토로서 참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오모리 네부타 마츠리의 역사 아오모리 네부타 마츠리의 기원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나라 시대 때 중국에서 건너온 "타나바타 마츠리(七夕祭, 칠석제)"와 아오모리의 츠가루(津軽) 지방의 풍습이 합쳐진 것이 네부타 마츠리의 기원이라 여겨지고 있습니다. 네부타란, 목재나 철사, 종이 등으로 만든 등불을 말합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네푸타" 라던지 "네후타"라고 부르는 곳도 있고, 유등의 형태도 각양각색이라고. 과거에는 네부타를 강이나 바다에 떠내려 보내는 것으로 무병장수를 기원해왔는데요, 현재에도 네부타 마츠리의 마지막 날에 "네부타 해상 운행"이라는 이름으로 네부타를 바다로 흘려보내고 있답니다.

    28.aug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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