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정보
니가타 현・오지야 지지미
토야마・다카오카 동기
이시카와현・와지마누리
후쿠이현・에치젠야키
기후현・미노 화지
나가노현・기소 칠기
야마나시현・코슈 수정 귀석 세공
시즈오카현・스루가 타케센스지 세공
아이치현・도코나메야키
마무리

일본의 옛 문화를 전하는 “전통 공예품”. 일본 각지에 존재하며 그 수는 1000가지가 넘는다고. 그 중에서도 "전통적 공예품"이란, 국가의 인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역사적으로도 귀중한 공예품이지요. 이번에는 츄부(中部, 중부)지방에 뿌리내린 전통 공예품, 오지야 지지미(小千谷縮)・다카오카 동기(高岡銅器)・와지마누리(輪島塗)・에치젠야키(越前焼)・미노 화지(美濃和紙)・기소 칠기(木曽漆器)・코슈 수정 귀석 세공(甲州水晶貴石細工)・스루가 타케센스지 세공(駿河竹千筋細工)・도코나메야키(常滑焼)를 소개합니다!

전통 공예품이란

전통 공예품이란, 예로부터 계승해 온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주로 일용품으로서 사용되며, 그 기술은 일본 제조업의 원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편, 국가의 인정을 받은 "전통적 공예품"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는 것이나 많은 공정을 수작업으로 실시하는 등, 국가가 지정하는 5개의 요건을 충족한 공예품을 가리키며, 현재 일본의 전통적 공예품의 수는 230개 품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니가타 현・오지야 지지미

오지야 지지미의 천

오지야 지지미

니가타현(新潟県) 오지야시(小千谷市)가 발상지인 마직물 "오지야 지지미(小千谷縮)". 지지미(縮)란, 천의 표면에 잔잔한 물결무늬가 있는 직물의 총칭으로, 주로 기모노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1955년에는 일본의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 2009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등 세계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본래 니가타현은 기모노의 산지로 유명하고, 이 오지야 지지미 이외에도 에치고 조후(越後上布)나 토오카마치 가스리(十日町白)등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오지야 지지미는 고급품으로 취급되어, 여러 장군들에게도 받쳐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오지야 지지미가 시작된 것은, 에도시대의 1670년즈음. 아카시 번(明石藩, 현재의 효고현)의 호리지로마사토시(堀次郎将俊) 씨가 원래 있던 에치고 조후를 개량해 완성 시킨 것이 오지야 지지미 입니다. 그 후 곧 오지야 지지미의 평판이 널리 퍼졌고, 전성기에서는 연간 20만 필(反, 필이란 기모노 한 벌 착용 분의 긴 천)의 오지야 지지미가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오지야 지지미가 인기를 끈 이유로 손꼽히는 것은 우수한 통기성과 기분 좋은 촉감. 그리고, 오지야 지지미에는 독특한 "시보"라고 하는 잔 주름이 있어, 땀을 흘리고도 끈적끈적하지 않기 때문에, 고온 다습한 일본의 여름을 보낼 때의 기모노로서 많은 사랑받아 왔습니다.

모두 수제로 생산되는 오지야 지지미이지만, 중에서도 "유키(雪さらし)사라시"라는 공정은 오지야 지지미에 있어 빠뜨릴 수 없습니다. 유키사라시란, 표면이 얼은 눈 위에 모시 천을 바래게해서 표백하는 공정을 말하는 것으로, 색의 선명함과 무늬를 돋보이게 만드는 등의 효과가 있습니다.

이 광경은, 오지야 겨울의 풍물시가 되고 있으므로 때문에 추천합니다.

토야마・다카오카 동기

다카오 동기의 제작의 모습

다카오카 동기(사진 제공:다카오카시)

토야마현(富山県) 다카오카시(高岡市)가 자랑하는 전통 공예품 "다카오카 동기(高岡銅器)". 다카오카 동기로 만들어지는 것으로는 화기(花器), 향로, 불구(仏具, 불교에서 쓰이는 기구)로는 범종, 브론즈 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이 있습니다.

1611년, 가가번(加賀藩)의 번주(영주) 마에다 도시나가(前田利長)가 성하 마을을 번영시키기 위해 7명의 주물 장인을 초청한 것이 그 시작입니다. 당초에는, 다이묘(大名, 넓은 영지를 가지는 무사)에 헌상하는 미술 공예품을 만들었지만, 에도(江戸)시대 중기가 되면서 화기나 불구 등에 끌로 금속에 조각을 입히는 "카라카네이모노(唐金鋳物, 청동 주물)"이 만들어지게 되면서 이를 계기로 다카오카 동기는 전국으로 퍼지며 발달해 갔습니다.

메이지(明治) 시대에는, 파리 만국박람회 등 수많은 만국 박람회에 출전하여, 다카오카 동기의 인기는 전 세계로 퍼집니다. 그 인기를 아직도 유지 중이며, 일본 전국에서 생산되는 동기의 약 90%를 차지할 정도로, 국가 전통적 공예품의 인정 역시 받고 있습니다.

다카오카 가나야마마치의 풍경

가나야마마치

마에다 도시나가 초대한 7명이, 거점으로 삼았던 성하마을은 공장만은 교외로 이전해 버렸고, 현재는 가나야마마치(金屋町)로 이름을 바꿨지만 돌길이나 낡은 집들이 여전히 나란하게 서서 남아 있는, 인기 명소입니다.

다카오카 동기의 주조법은 미술 공예품 등을 만드는데 적합한 납형(蝋型, 밀랍 주형), 동상이나 불상을 만드기에 적합한 소형(焼型), 냄비, 차 가마 등의 원뿔형으로 만드는데 적합한 쌍형(双型), 화병이나 장식물 등을 만들 때 적합한 생형(生型, 생사 주형) 네 가지로 분류됩니다.

그 중에서도 생형은, 하나의 원(原)형으로부터 복수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과, 주물사(砂, 모래)를 재 이용할 수 있다고 하는 이점이 있어, 다카오카 동기의 대표적인 주조 방법으로 계승되어 왔습니다.

이시카와현・와지마누리

와지마누리의 공기

와지마누리

이시카와현(石川県) 뿐만 아니라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적 공예품인 “와지마누리(輪島塗, 와지마 칠). 이시카와현 북부 노토(能登) 반도에 위치한 와지마시(輪島市)에서 태어난 칠기로 전국 칠기 산지에서 유일하게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전통 공예 와지마누리입니다.

칠기란, 옻나무의 수액의 뛰어난 성질인 도장과 접착성을 살린 공예 기술로, 장식에 옻칠이 행해진 기구나 도구를 말합니다. 옻 칠까지는 20공정 이상, 총 횟수로는 75~124회나 되는 정성스런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와지마누리는, 옻칠이 두껍게 되어 있기 때문에 몇 백년이 지나더라도 변하지 않는 색이 매력입니다.

와지마 누리의 시작은 약 1,000년 전에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설과 15세기 초에 와카야마(和歌山)에 있는 네고로지(根来寺)의 승려가 전했다는 설 등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와지마누리는, 와지마시의 주조 신사(重蔵神社)에 있는 1524년에 만들어진 "주조 권현 본전(重蔵権現本殿)”의 “슈누리토비라(朱塗扉)"입니다.

와지마누리는 두툼하게 칠을 한 것이 특징 중 하나인데, 이것은 와지마에서만 할 수 있는 기법입니다. 비가 많고 습도가 높은 와지마의 기후가 옻칠을 말리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며, 이 기후가 와지마에서 옻칠을 통한 공예가 왕성한 이유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와지마누리의 젓가락

와지마누리의 일용품

하지만 와지마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칠기를 와지마누리라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칠 등 모든 원재료는 천연의 것을 사용하고 있는 등, 다양한 요건을 갖추었을 때에만 비로소 전통적 공예품, 와지마누리의 이름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후쿠이현・에치젠야키

에치젠야키의 항아리

항아리(사진 제공:후쿠이현 관광 연맹)

후쿠이현(福井県) 에치젠초(越前町)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에치젠야키(越前焼)". 중세로부터 현재까지 생산이 계속 되는 대표적인 가마인 일본 로쿠고가마의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2017년에는 일본 유산에도 등록되었습니다.

"에치젠야키”에 사용되는 흙에는 철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고, 구워낸 후에 적갈색이나 검붉게 변하는 것이 특징. 구워서 다져진 흙은 물이 새기 어렵기 때문에 에치젠 야키는 물이나 술 등의 보관에 사용되었습니다.

에치젠야키의 기원은 지금부터 약 850년 전의 헤이안(平安)시대. 본래 토기 종류 중 하나인 스에키(須恵器)를 굽고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도자기로 유명한, 아이치현 토코나누(常滑)의 기술을 도입하여 도자기를 만든 것은 최초입니다.

무로마치(室町) 시대 후기에는, 당시 일본의 물류의 대부분을 담당했던 키타마에부네(北前船)에 의해서 일본 전국으로 수송되어 동해측 최대의 가마터로 발전했습니다. 에도시대에 들어서면서, 내화도(불에 타지 않고 견디는 정도)가 낮은 전답(논밭)이 사용됩니다. 그리고 구워서 마무리를 하는 것이 아닌, 시유도기(施釉陶器)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화려하고 세련된 색채의 그릇이 구워지게 되었지만, 10여년 만에 폐가마가 되게 됩니다.

메이지 시대에 한 번 쇠퇴 했던 때도 있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다시 주목을 받아, 현재까지 계승되고 있습니다.

에치젠야키의 제품

에치젠야키(사진 제공:후쿠이현 관광 연맹)

소박하고 정감 있는 바람과 촉감이 에치젠야키의 매력. 철분이 많은 흙을 사용하여 구워냄으로써 흑회색에서 적갈색까지 변화합니다. 천연 유약이 흘러내리는 아름다움이, 에치젠야키의 큰 특징입니다.

기후현・미노 화지

미노 화지

미노 화지

기후현(岐阜県) 발상의 “미노 화지(美濃和紙, 미노와시)”. 후쿠이현의 에치젠 화지(越前和紙, 에치젠와시), 고치현(高知県)의 도사 화지(土佐和紙, 도사와지)와 나란히 “일본 3대 화지(和紙, 일본 고유 종이)”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노 화지의 기원은 불명하지만, 나라(奈良)시대의 호적 용지에 미노 화지가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에, 적어도 약 1300년전에는 미노 화지가 존재 했다고 사료됩니다.

화지 제작에는 원료가 되는 “닥나무(楮, 코조)”, “삼지 닥나무(三椏, 미츠마타)”, ”안피나무(雁皮, 간피)”를 채취가 가능하며, 양질의 냉수가 풍부할 필요가 있었는데, 미노 지역은 이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게다가 수도에도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화지 제작이 발전했습니다.

미노 화지에 주로 쓰이고 있는 것은 닥나무로, 미노 화지를 이루는 닥나무는 양질의 것이 많으며, 무로마치 시대에 개최된 종이 시장에서는 미노 화지를 얻기 위해 일본 전국에서 구매자들이 모였을 정도라고 합니다.

에도시대에들어 미노 화지는, 장지(문 종이)로도 사용되게 되었고, 막부(정부)에 장지를 봉납하는 것으로 제역의 면제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 미노 화지 중에서도, 인정 받은 일부의 장인이 정해진 재료와 도구를 사용해 만든 일본 종이를 "혼미노시(本美濃紙)"라고 하며, 1969년에 국가 중요 무형 문화재, 2014년에는 "화지 : 일본의 손으로 뜬 일본 종이 기술"로서 유네스코의 무형 문화유산에도 등록되어 있습니다.

미노 화지의 조명

조명

“나가시즈키(流し漉き, 흘려 뜨기)”라는 기술로 뜨여진 미노 화지의 특징은, 얼룩이 없고 천처럼 튼튼하다는 점. 장지나 편지지를 비롯해 드레스나 인형 등에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나가노현・기소 칠기

기소 칠기의 제품

기소 칠기(사진 제공:나가노현 관광 기구)

나가노현(長野県) 시오지리시(塩尻市) 주변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기소 칠기(木曽漆器)". 기소 칠기의 특징은, 칠 기법에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 점. 나무의 나이테와 같은 독특한 모양을 그리는 "츠이슈(堆朱)"나 거울과 같이 빛나는 옻칠을 하는 "로이로누리와케누리(呂色塗り分け塗)", 옻칠로 그림이나 모양을 그리고, 그 위에 금가루나 은가루 등을 바르는 "마키에(蒔絵)"등이 있습니다.

약 400년전, 오와리 도쿠가와(尾張徳川)번의 극진한 지원에 의해서 발달해, 당시는 5가도의 나카센도(中山道)를 거쳐가는 사람들을 위한 기념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시오지리에서 칠기 제작이 행해진 그 배경에는 기후 조건과 식물이 관계 있습니다.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극한의 기후가 옻칠 작업의 환경에 적당해, 노송나무나 계수나무 같은 칠의 원료가 되는 나무들이 풍부해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칠기 제작이 왕성히 행해지게 되었습니다.

기소 칠기가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메이지 시대 초기의 일. 사비츠치(錆土)라는 철분을 많이 포함한 흙이 발견되어 딱딱하고 튼튼한 칠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소 칠기의 공기

공기(사진 제공:나가노현 관광기구)

이를 계기로 기소 칠기의 이름은 전국에 알려졌고, 지금까지도 서민들의 생활용품을 만들어 온 한편, 고급스러운 일용품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칠기의 대표격인 공기나 쟁반은 물론, 기소에서는 "멘파"라고 불리는 전통의 도시락 통도 만들어져, 보다 고급스러운 도시락이란 것으로 인기입니다.

야마나시현・코슈 수정 귀석 세공

야마나시현(山梨県) 코후시(甲府市)에서 만들어진 “코슈 수정 귀석 세공(甲州水晶貴石細工)”. 코슈 수정 귀석 세공의 특징은 천연 귀석(貴石)의 투명감에 “미”가 추가된다는 점. 정말 수작업으로 조각되었는가 의심될 정도로 복잡하면서도 박력 있는 조각이 새겨져 있습니다.

또한 천연 수정을 사용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하나라도 같은 것은 없다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 일본 유수의 경승지로 알려진 “쇼센쿄(昇仙峡)”의 오지, 긴푸산(金峰山)에서 수정의 원석이 발견된 것이 그 기원입니다

당시에는 그 원석을 제물로 소중히 다루고 있었지만, 에도시대 후기에 교토에서 옥조 장인을 불러 콘고샤(金剛砂)라는 딱딱한 돌가루를 철판 위에 뿌려 보석을 닦는 방법을 생각해 내면서 수정의 세공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갑주 수정 귀석세공이 완성되기까지는 원석을 고르는 것부터 마무리까지, 주된 7개의 공정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귀석 세공의 기반이 되는 것이 원석의 선정. 현재는 수정의 채굴은 행하고 있지 않지만, 수입한 수정이나 다이아몬드 등, 수 십 종류나 되는 원석 속에서 작품에 적합한 것을, 장인이 오랜 경험과 감을 바탕으로 선택합니다.

귀석에 따라 여러 가지 특징이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귀석 세공해 온 장인에게도 매우 어려운 공정입니다. 코슈 수정 귀석 세공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오브제나 팔찌, 반지 등. 수정의 투명성을 마음껏 살린 것 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을 위한 선물로도 환영 받을 겁니다.

시즈오카현・스루가 타케센스지 세공

국가의 전통적 공예품의 인정을 받고 있는 "스루가 타케센스지 세공(駿河竹千筋細工)", 현재의 시즈오카현에 해당하는 스루가로, 에도시대부터 계승되어오고 있습니다.

타케센스지란 가는 타케히고(竹ひご, 대오리. 즉 대나무의 줄기를 쪼개서 만든 가는 막대기)를 말합니다. 스루가의 타케센스지세공에서는, 일본 전국의, 엮는 죽세공과 달리 지름 0.8mm 정도의 마루히고(丸ひご, 단면이 둥근 막대기)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스루가는 원래, 양질의 대나무 생산이 많은 땅으로 알려져 있던 장소입니다. 야요이(弥生) 시대의 유적・도로(登呂) 유적에서는 대나무 소쿠리나 바구니도 출토되고 있습니다.

에도시대 초기, 스루가 있는 나라는 장인의 마을로서 번성해, 이때부터 "스루가 죽세공"의 이름이 일본 전역에 알려집니다. 그 후, 1840년에 오카자키(岡崎) 번사(藩士, 영주에 속하는 무사)가 시미즈 이헤에(清水猪兵衞)에게 죽세공 기술을 전했고, 마루히고를 이용한 스루가 타케센스지의 세공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로 "히고 만들기" "테 만들기", “짜기” "조립"의 4개의 공정으로 나뉘어져 거의 모든 공정을 한 사람이 시행하는 스루가 타케센스지 세공. 완성된 죽세공은, 마루히고의 섬세한 곡선이나 색상의 아름다움이 매력적입니다.

아이치현・도코나메야키

도코나메야키의 산책로

도자기 산책로

후쿠이현의 에치젠야키와 마찬가지로 일본 여섯 고(古)가마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도코나메야키(常滑焼)"입니다. 도코나메야키의 특징은 윤기 있는 주홍색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원료에 포함된 철분과 도토에 함유되어 있는 산화철이 붉게 발색되어 이렇듯 아름다운 주홍색이 탄생합니다.

또한 이세만(伊勢湾)에 접한 도코나메는 바닷가를 통한 유통의 발전으로 일본 여섯 고가마중 최대의 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역사는 헤이안 시대말까지 거슬러 올라가 아이치현의 남서쪽에 위치한 지타(知多)반도의 구릉지 거의 전역에 아나가마(穴窯, 언덕의 사면에서 파내어 상부를 흙으로 덮은 터널형의 도자기 가마)를 만들어 그 수는 약 3,000기에 이릅니다.

당초에는 밥공기와 항아리 등이 만들어졌지만, 가마쿠라(鎌倉) 시대에는 높이가 50cm가 넘는 도자기도 등장해 무로마치 시대 생산품의 대부분은 대형이었습니다.

메이지 시대가 되어 유럽과 미국의 기술이 도입되게 되면서, 도코나메야키는 한층 더 성장을 이루었고, 종류도 생산량도 증가의 일로를 걷습니다. 2017년에는 일본 유산에도 등록되어 현재도 많은 도코나메야키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도코나메 야키의 차 주전자

차 주전자와 차

또한 도코나메야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차 주전자. 도코나메야키에는 산화철을 많이 포함한 도토(陶土, 도자기 원료인 백색 점토)가 이용되므로, 차를 달였을 때 산화철과 차의 탄닌이 반응함으로써 도코나메야키의 차 주전자에서 끓인 차는 맛이 더 진해진다고 합니다.

세계에 하나뿐인 공예품을

그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고, 구할 수 있는 전통 공예품은 기념품으로도 딱 입니다. 공예품 만들기를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시설도 많이 있으므로, 꼭 한번 오리지날의 공예품을 만들어서 기념품으로써 가지고 돌아가는 건 어떠신가요.